공지사항
제16차 장성지역 후원회 답사 2013-11-09
2013년 11월 07일(목) 전남 장성지역 후원회 답사를 류한성 수석부회장과 이천용 사무국장이 했디.


오산창의사 외삼문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72명의 숭고한 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오산창의사가 전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모현리에 소재한 오산창의사를 방문했다.


율정공(栗亭公윤진(尹軫장군을 모신 내 삼문


오산창의사 사당 본전  좌로부터 변동빈, 류한성 본회 수석부회장, 변온섭 이사장, 유림회 회장, 변원 봉암서원 별유사, 변갑섭 회장.


본전 오산창의사 현판


비에 새견진 72분에 대하여 변온섭 이사장의 설명을 하고 있다.
오산창의사의 역사적 의미와 학술적 가치는 매우 높다. 오산창의사에는 당시 의병활동에 나섰던 선비, 관군, 승려 뿐 아니라 노비까지 총 72명이 배향돼 있어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 제도가 엄연히 존재하던 당시에 ’사민평등(四民平等)의 이상을 실현한 신성한 장소로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오산창의사 전경


창의 비각

율정공(栗亭公윤진(尹軫장군의 창의 비각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사거리


북이면(면장 송준용) 면장실에서 차를 대접받고 환담 후


휴암공(鵂巖公변윤중(邊允中선생이 정유재란시 순사한 전라남도 장성읍 부흥리에 소재한 휴암(부엉이 바위)에서
그 당시에는 부엉이바위 아래로 황룡강이 흘렀다고한다. 지금은 물길이 바뀌어 사진촬영한 곳 앞으로 흐른다.


삼강정려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장안리


삼강정려 현판


휴암공(鵂巖公변윤중(邊允中선생의 충신정려 현판
망암공 변이중 선생이 화차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만석꾼이던 휴암공(鵂巖公변윤중(邊允中선생이 막대한 재정지원을 한 덕분이라한다.


휴암공(鵂巖公변윤중(邊允中선생의 부인 함풍성씨 열녀 정려 현판


선무랑 변형윤의 부인 장성서씨 효부 정려 현판


시징당에서 
임진왜란 당시 화차 300량과 총통을 발명하여 행주산성의 권율(權慄)에게 지원한 변이중(邊以中)의 유품과 화차를 전시하기 위해 변이중의 위패를 모신 봉암서원 앞에 개관하였다. 전시관에는 화차 3종, 총통 14종, 화살 11종, 신기전 6종, 포통 8종 등이 전시되어 있다.


망암공(望菴公변이중(邊以中선생이 개발한 화차의 내부 모습
변이중 선셍은 왜군의 조총을 능가하는 무기를 구상하여 화차 300량을 제작하였는데 화차는 4면에 40개의 총구를 만들어 40발을 동시에 쏠 수 있었다. 권율에게 40량을 보내어 행주대첩을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해전에서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중 3대 발명품의 하나로 평가 받는다.


좌로부터 변갑섭 이사, 류한성 수석부회장, 변온섭 본암서원 이사장, 변원 봉암서원 별유사, 변동빈 장성군신문 대표.

 
봉암서원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장안리 
봉암서원 사적비, 봉서원 안내판, 삼강정려비각, 시징당, 홍살문, 봉암서원이 차레로 보인다.


봉암서원 전경


봉암서원 현판  강암 송석용 선생 글씨


봉암서원 본전
1697년(숙종 23)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변이중(邊以中)의 덕행과 업적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뒤 1707년에 변경윤(邊慶胤)을, 1728년(영조 4)에 윤진(尹軫)·변휴(邊烋)를 추가 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가 1974년 전라남도 유림에 의하여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종앙사(宗仰祠), 내삼문(內三門), 7칸의 성경당(誠敬堂), 4칸의 훈덕재(薰德齋), 4칸의 경의재(景義齋), 외삼문 등이 있다. 이 서원은 화차제조(火車製造) 유적지라 하여 문화재지정일확인요망<시간 제목="봉암서원이 문화재로 지정됨" 연도="1982-00-00">1982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54호로 지정되었으며, 1984년 2월 준공 때 변윤중(邊允中)을 추가 배향하였다. 매년 2월 20일과 8월 20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봉암서원 강당 성경당   일중 김충현 선생 글씨


성경당


봉암서원 서재 경의재 1980년대 성균관장을 3연임한 이재서 관장의 글씨


서원 훈덕재에는 삼강오륜의 첫번째를 뜻하는 세송이의 호박꽃이 피어 올랐다. ㅋ


봉암서원 동재 훈덕재 현판   1980년대 성균관장을 3연임한 이재서 관장의 글씨


봉암서원 종앙사  여초 김응현 선생 글씨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에 소재한 필암서원을 찾았다.


확연루 현판


필암서원 전경
1590년(선조 23) 호남 유림들이 김인후(金麟厚)의 도학을 추모하기 위해 장성읍 기산리에 사우(祠宇)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자 1624년에 복원하였으며, 1662년(현종 3) 지방 유림들의 청액소(請額疏)에 의해 ‘필암’이라고 사액(賜額)되어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672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고 1786년에는 양자징(梁子澂)을 추가 배향(配享)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시 훼철(毁撤)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필암서원 현판


필암서원 강당


필암서원 묘정비와 경내